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크림 타타르 (문단 편집) == 현황 == 1991년 [[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가 [[크림반도]] 귀속 의향을 보였지만 러시아에 학을 뗀 크림 타타르인들이 적극적으로 반대해 막았다. 소련 해체를 전후하여 중앙아시아 일대의 크림 타타르인들 상당수가 이 시기에 크림반도로 돌아왔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자국 내 타지크인들을 반강제로 우즈베크인으로 동화시키는 정책을 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크림 타타르 민족주의 운동을 막았으며 독재정권이 들어서고 경제 발전이 지체되는 이유도 있었고, 이 당시에는 우즈베키스탄이나 우크라이나나 경제사정이 거기서 거기이기는 했지만 크림반도가 인프라가 더 좋았던지라 크림 반도 고향땅으로 돌아오는 것을 선택한 것.[* 같은 맥락에서 카자흐스탄 일대로 강제이주당했던 [[메스케티 튀르크]]인(조지아 일대에 살던 튀르키예인)이나 햄신인(아르메니아인들 중 순니파 이슬람을 믿는 민족 그룹)들 역시 소련 해체 이후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일대로 대거 이민하였다.] 돌아온 크림 타타르인은 크림반도에서 모스크를 새로 짓거나 복원하고 자신들의 고유 정체성, 문화, 언어와 종교의 가치를 되살리려고 노력했으며, 타타르 전통 이슬람 대학 등의 교육기관을 세웠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점령하자 과거로의 회귀를 두려워한 크림 타타르인들이 대규모의 반대 시위를 벌였지만 강제 진압되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에 있는 非러시아인들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벌였고, 여기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크림 타타르인이었다. 이들이 두려워한 일이 결국 다시 일어난 것이다. 제일 먼저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타타르인의 정체성, 언어, 문화 보존에 노력하던 지식인들과 남자들을 불법으로 구금, 고문하며, 심각한 박해와 인종청소가 시작됐다. 형식적 재판을 통해 2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일부 타타르 남자는 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 이러한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 본토로 도망쳤지만, 여자와 어린이들은 크림반도에 남으면서 많은 이산가족이 형성되었다. 2014년 [[돈바스 전쟁]]이 발발하자 본토로 피신한 크림 타타르인들은 크림반도로 돌아가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편을 들어 싸움에 뛰어들었다. 최초의 크림 타타르인 의용군 부대인 노만 첼레비지한 대대(Батальйон імені Номана Челебіджіхана)를 거쳐 크림 타타르 대대(Батальйон Крим)라는 특수부대가 창설되었으며, 마즐리스(이슬람 의회)는 크림은 우크라이나에 돌아가야 한다며 이슬람 국가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리고 인정받기 위해 맹렬히 싸웠으며 8년 동안 [[공공의 적]]과 함께 맞서면서 우크라이나인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완화되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크림 타타르인들의 강제 이주를 추모하는 기념일이 존재한다. [[2014년]] [[5월 16일]]에는 대통령령으로 [[5월 18일]]이 '크림 타타르인의 권리를 위한 투쟁의 날(День боротьби за права кримськотатарського народу)'로 제정되었으며, [[2015년]] [[12월 12일]]에는 우크라이나 의회가 [[5월 18일]]을 '크림 타타르인 집단학살 추모일(День пам'яті жертв геноциду кримськотатарського народу)'로 제정한 바있다. [[http://omn.kr/1ke9s|관련 기사]] 다만 기념일이 성립된 시기를 보면 알겠지만 이는 우크라이나인들이 크림 타타르인들이 탄압받는 것을 동정한다기보다는 러시아가 크림 반도를 병합한 것을 항의한다는 정치적 의미가 더 크다. 튀르키예의 경우 위구르 난민들이 중국의 [[신장 재교육 캠프]] 관련하여 강경한 항의시위를 이어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튀르키예 내 크림 타타르인 인구는 사실상 튀르키예인 일반에 완전히 동화된 상황이라, 별다른 액션이 없다. 이는 상술한 것처럼 튀르키예 내에서 크림 타타르어가 촌스러운 사투리 취급을 당하면서, 튀르키예 내 크림 타타르인들이 따로 자신들이 크림 타타르인이라는 민족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점에서 기인한다. 오늘날 튀르키예 내 크림 타타르인 후손 중 청년층 대다수는 크림 타타르어를 구사하지 못하고 튀르키예어를 모어로 구사하는 상황이다. >'''Qırım serbest olacaq.''' > '''크림은 자유로워질 것이다.'''[* [[https://www.president.gov.ua/en/news/zvernennya-prezidenta-ukrayini-z-nagodi-dnya-pamyati-zhertv-75129]] 러시아의 침공이 한창이던 2022년 5월 18일 크림 타타르인 집단학살 추모일에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이 게시한 연설 중 한 문장. 우크라이나의 크림 반도 수복 의지와 크림 타타르인 공동체와의 연대를 보여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2022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전면전이 일어나자 적지 않은 크림 타타르인들이 크림반도를 되찾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싸우고 있다. [[오스만 제국]]의 후신인 [[튀르키예]]와의 우호관계도 남아있어 전쟁 초반부터 튀르키예에게 협력을 꾸준히 요청했고, 튀르키예도 명분상 크림반도의 선주민인 크림 타타르를 위해서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 이것도 명암이 존재하는데 지원을 대가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아흐메트 다우트오을루 총리가 우크라이나 정부에게 튀르키예의 치부이자 민감한 과거사 문제인 [[아르메니아인 대학살]] 사건을 부정해 달라고 꾸준히 딜을 넣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5월 18일 우크라이나 정부 홈페이지에 크림 타타르인 집단학살 추모일을 기념하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연설 영상을 게시했다. 1944년 크림 타타르인 강제 이주의 역사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그리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설명하면서 크림 타타르인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고 우크라이나인도 이에 동정하는 것을 강조하였으며 같은 원주민이자 공공의 적을 둔 우크라이나로서 연대를 통해 러시아로부터 크림 반도를 되찾을 것을 천명하였다. [[https://www.president.gov.ua/en/news/zvernennya-prezidenta-ukrayini-z-nagodi-dnya-pamyati-zhertv-75129|#]] 크림 타타르인의 민족회의기구인 크림 타타르 밀리 메질리스(Къырымтатар Миллий Меджлиси / Qırımtatar Milliy Meclisi)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크림반도로 이주한 러시아인들은 불법체류자라며 크림반도를 되찾으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